* 신 앙 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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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은 친구들의 몰이해 속에 고통을 겪으며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합니다. 그는 자신이 받아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살아계신 주님을 깨닫고 구원자이신 그분을 뵙기를 갈망합니다.(제1독서) 희망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근거입니다. 신앙인은 이루어질 구원의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희망하는 바를 믿는 것은 이미 삶 속에 구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제2독서) 우리 삶 속에는 참된 행복이 숨어 있습니다. 가난해도, 슬픔 속에서도, 때로는 온갖 박해와 고통 속에서도 하늘 나라의 참된 행복은 그 안에 있습니다. 그 행복을 깨닫고 사는 사람은 하늘 나라를 이미 사는 사람입니다.
저울에 행복을 달면/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불행 49% 행복 51%면/ 저울이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행복의 조건엔 /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 단 1%가 우리를 행복하게/ 또 불행하게 합니다/ 나는 오늘 그 1%를 / 행복의 저울 쪽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래서 행복하냐는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행복하다고 ....., 이해인 수녀님의 "1%의 행복"이라는 시에서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내 마음의 무게를 어디에 두었느냐에 따라 기울기가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우리 삶이라는 것이 온전히 행복할 수도 그렇다고 온전히 불행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쁘고 행복하다고 하는 순간에도 그 안에는 말 못할 슬픔이 잠겨있고, 슬프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희열과 행복이 감추어 있습니다. 영성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한가운데 살아야 하는 신앙인은 늘 성과 속의 경계를 걷는 사람입니다. 이 말은 성과 속의 저울 양편에 놓인 우리 마음처럼 1%만 더 주님께 관심을 기울여도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참 행복으로 초대하십니다. 당신 안에, 당신의 거룩하신 그 말씀 안에 하느님 나라가 있고, 하느님 나라야말로 우리가 얻어 누려야 할 참행복입니다.
이미 우리보다 앞서 돌아가신 분들은 그분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 참행복을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연령들이 있다면, 하루빨리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는 기꺼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습니다. 성인 반열에 오르신 분만이 통교의 대상은 아닙니다 연옥 영혼들과도 친교를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이 '그날'입니다. 앞서 간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도 기도해 주십니다. 각박한 현실에서 '행복과 기쁨'에 대한 깨달음을 주시기를 청해야겠습니다.
성령님, 저희에게 닥쳐오는 모욕과 박해를 예수님을 위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소서, 아멘. ------- 오늘의 강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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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넘치도록 베푸시는 당신 사랑 속에서 저흰 행복합니다.
앞서 가신 모든 연령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평화의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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