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를 보면
'들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묵시 3, 20)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은 항상 우리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소리를 의식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우리가 우리 가슴속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은
머리 속의 생각에 치우쳐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물 속에 무언가를 빠뜨렸다고 한다면 물살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흔들림이 없을 때 그것을 집어 올립니다.
그러나 물을 헤치고 휘저으면 물결은 더욱 흔들리게 되어
물 속에 있는 것을 볼 수조차 없게 될 것입니다.
물결이 잠잠해 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곧 머리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가슴과 머리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머리가 커질 때
우리는 내면의 목소리,
가슴의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반대로 머리가 작아질수록 내면의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머리에 가득 차 있는 관념들을 비울 때,
그 빈 공간을 하느님(사랑)으로 채울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자신의 모습을 관찰해 보면
자신이 내면에 계신 하느님을 찾고 있는지
아니면 머리로 하느님을 찾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머리로 찾는다면 그것을 기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정리입니다.
정리는 기도가 아닙니다.
정리하는 것을 멈추고
내면의 하느님,
가슴 속의 하느님을 찾는 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하느님은 지금 문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이 관념들로 채워져서 시끄럽다면
어떻게 하느님이 들어오실 수 있겠습니까?
머리에서 계속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면
하느님이 문을 두드린다고 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할 것입니다.
열왕기 상권(19, 9-18)에서 엘리야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크고 강한 바람 가운데서도 아니고,
지진 가운데서도 아니고,
불길 가운데서도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소리는 천둥과 같은 소리가 아니라
늘 가슴 속의
'조그마한 소리'로 들려오기 때문에
이 소리에 민감하지 않으면 지나치기가 쉽습니다.
영혼이 배고플 때에 필요한 것은 관념이나 지식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즉, 정리가 아니라 가슴 속에 숨어 계신 하느님을 만날 때
그 배고픔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세례자 요한도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 30)고 하였습니다.
내가 작아진다는 것은
바로 생각하기를 멈춘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커져야 한다는 것은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마음을 비우려는 노력,
즉 빈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을 해야합니다.
빈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먼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머리로 생각을 하면서 빈 마음이 될 수는 없습니다.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다 가질 수 없고 둘 다 커질 수도 없습니다.
머리가 앞서면 가슴은 그 뒤를 따를 뿐이고,
가슴이 먼저 움직일 때
머리는 그 가슴의 움직임대로 따를 것입니다.
머리가 커지면
가슴은 작아지고
가슴이 커지면
머리는 작아지게 되듯,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가슴이 커지게 될 때
우리는 빈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 때 바로 내면에 숨어 계신 하느님을 만나게 되어,
세레자 요한과 같은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내면의 하느님을 만나시기 위하여
일찍 일어나 기도하시고(마르 1, 35),
홀로 기도하시고(마태 14, 23. 루가 9,18),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도 기도하시고(마르 1, 35:. 6, 46: 루가 5, 16:),
밤 늦도록 기도하시고(마태 14, 23: 루가 6, 12:),
제자들을 데리고 함께 기도하시고(루가 9, 28:),
내면과의 싸움이 있었을 때는
피땀을 흘려가면서까지 기도를 하셨습니다.(루가 22, 44:).
결국 기도는 내면에 숨어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내면에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일찍, 자주, 오래도록,
어떤 때는 피땀을 흘려 가며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가슴 깊숙히 숨어 계신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데는 왕도가 따로 없습니다.
가슴 속에 숨어 있는 하느님을 만나려는
끊임없는 노력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어 주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싢어하는 사람,
미워 하는 사람,
용서하기 힘든 사람,
보기 싫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을 때,
그들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소리,
곧 내면으로부터 들려 오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내면에 숨어 계신 하는님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내면에 숨어 계신 하느님,
즉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고.
보기 싫어하고,
용서하기 힘든 사람들의 소리를
어떻게 하면
보다 더 잘 알아들을 수 있고,
잘 만날 수 있겠습니까?
<가슴으로 드리는 기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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